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05 - 김도향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한다._05
대변
현대인들은 화장실에서 정작 용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책 신문을 보거나 생각에 잠긴다. 심지어는 화장실을 나 홀로 사색하는 공간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는 목적은 바로 배설이다.
대변, 소변이라는 말에는 큰 편안함, 또는 작은 편안함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똥눌 때 똥만 눠야 하는 데 신문, 잡지에 오만 잡생각에 싸여 있으니 배설 행위는 잊어버린 상태가 된다. 정신 차리고 '똥과 나, 둘만의 상태에서 빠져나가는 굵은 배설물을 통해 진한 쾌감을 맛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의 똥 누는 표정을 보았는가? 그 편안하고 행복한 표정을!
그러나 현대인들은 화장실에서조차 정신을 잃고 딴 짓거리를 하는 바람에 변비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똥 누는 순간에도 정신을 차리며 천국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고 정신을 잃으면 지옥 같은 고통 속으로 빠지는 것이다.
일제시대의 깨우친 스님 만공 선사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놈들아, 똥눌 때만이라도 정신차리면 해탈할 수 있어!"
산다는 것이 무언가,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면서도 정신을 잃은 채 딴짓거리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매일같이 반복되는 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기쁨들을, 정신 차리고 살면 모두 맛볼 수 있는 그런 짜릿한 기쁨들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면 진실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숙변 이야기
우리는 매일같이 먹고 배설하면서 산다. 그렇게 많아 먹으면서 땀, 소변, 대변 등을 통해 정화시키면서 해결해 나간다.
그러나 정화되지 않은 음식물들이 딱딱하게 굳어 창자 속 구석구석에 숨어들어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 그 창자 속에 숨어 있는 숙변은 우리 몸에 커다란 해를 입히고 건강을 악화시킨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숙변을 제거시키고 있다.
나와 도반들은 육체적인 숙변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행했었다. 설사약을 먹어 속을 씻어내기도 하였고, 직접 관장을 10년 가까이 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참기가 몹시 어렵더니 차츰차츰 양이 늘어나 어느 때는 작은창자의 하얀 분비물까지 쏟아내기까지 하였으나 더불어 기운도 많이 빠져나가 손실을 입기도 하였다.
오 원장의 경험에 의하면 어떤 죽은 사람의 내장을 열어보았더니 숙변이 한 말이 넘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숙변이란 우리의 육체를 손상시키는 작용을 하는 위험한 것이다. 어떤 경우이건 우리가 먹은 것은 무리한 방법으로라도 정화를 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음식을 먹듯이 눈, 귀, 코, 의식 등을 통해 매일같이 받아들이는 정신작용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무관심한 편이다. 놀랍게도 우리가 받아들인 정신적인 모든 것들 또한 물질처럼 아니, 물질로서 계속 쌓인다.
그렇게 많이 먹어들인 정신적인 것들은 어떻게 정화되는 것일까? 운동을 통하여, 오락을 통하여, 또는 노래방 가서 소리 한번 크게 지름으로써 자연스럽게 배설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그렇게 엄청나게 먹어댄 물량을 정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나머지들은 전부 딱딱하게 굳은 채로 우리의 잠재의식 상층부에 구석구석 쌓이게 된다. 마치 창자 속에 박혀 있는 숙변처럼 바로 영혼의 숙변으로 되는 것이다.
숙변을 제거하지 못하면 몸에 병이 들 듯이 마음의 숙변을 제거하지 못하면 영혼이 병든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의 숙변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들은 창작을 통하여 영혼의 숙변을 제거한다. 깊은 경지로 내려갈수록 깊은 곳에서 숙변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예술의 행위란 영혼의 숙변을 제거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배출해 놓은 영혼의 똥을 우리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 예술이건 고급예술이건 예술가의 영혼의 똥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젊은 시절의 잠재의식 상층부에서 나온 숙변의 냄새와 경지에 오른 뒤의 잠재의식 하층부에서 나온 숙변의 냄새는 질적으로 다르다. 얕은 층에서 나오는 똥냄새는 향취 중에 '취'에 비교할 수 있고, 깊은 층에서 나오는 똥냄새는 향취 중에서 '향'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옛날 허준 선생이 어느 시골을 가는데 마을 사람들이 허준 선생을 알아보고 강제로 납치하다시피 하여 어느 집으로 끌고 갔다. 가서 보니 신랑 신부가 결혼한 첫날밤에 두 사람 다 죽어버린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자 허준 선생이 가만히 살펴보더니 마을 사람들에게 근처 절간에 가서 아주 오래 목은 똥물을 떠오라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급히 똥물을 떠오니 허준 선생이 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 신랑 신부에게 사정없이 뿌리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죽은 줄 알았던 신랑 신부가 부시시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너무나 감격하여 신의 허준 선생에게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렸다.
허준 선생의 놀라운 치료법은 다름 아닌 향과 취의 조화를 이용하였던 것이다.
옛날에는 신혼 첫날밤의 성적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시집가는 딸에게 사향을 싸서 보냈는데, 그 사향을 너무 많이 사용하다 보니 사향의 지나친 향에 중독이 되어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허준 선생은 그 이치를 알고 향을 억제하는 취로서 오래된 똥물을 사용하여 사향의 독을 제거시킨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향이라도 도가 지나치면 독이 되는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다익선인 줄 알고 지나치게 마시고, 먹고, 쓰고 있다. 향과 취를 적당히 조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허준 선생이 신혼부부를 치료해 줌으로써 보여주었듯이 아름다움과 추함의 조화, 바로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넘는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여하튼 예술가가 뿜어내는 조화로운 향취를 우리들은 작품 감상을 통하여 얻게 된다. 최근에 어떤 작가는 지나치게 '향'기만 뿜고 있고, 또 어떤 작가는 지나치게 '취'기만 뽑아 내어 감상하는 대중을 마비시키고 있다. 어떠한 경우이건 우리는 예술가들이 배설하고 있는 영혼의 똥을 예술이란 이름 하에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영혼의 숙변이 정화되면 정화될수록 정신이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직업을 통해서 영혼을 정화시키듯 우리들 또한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영혼의 숙변을 정화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번 삶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샤워하고 배설하여 눈에 보이는 물질들을 정화시키듯이 매일 매순간 먹어 버린 의식 또한 매일매일 정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영혼의 샤워! 그것이 바로 명상이고, 정신 차린 상태이기도 하다.
하다못해 종교적인 수행 속에서도 영혼의 숙변은 쌓일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적 수행조차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영혼의 샤워를 통해 마음속 깊이 숨어 버린 내면의 숙변을 제거하자!
김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