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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삶의 지혜/상식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그 빛과 그림자



달동네가 대규모 주택단지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가끔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개발이 전혀 안 된 이른바 달동네 마을을 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지정한다. 지금껏 도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불편하고 사람들이 기피해 온 지역이 하루아침에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새로운 주택지역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정부의 새로운 부동산 정책 덕분에 달동네 에 자기 땅을 가진 이들은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는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낙후된 지역에 자기 땅을 가진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대다수 거주민은 다른 부자 동네에 살고 있는 이들이 소유한 땅에 불법으로 집을 짓고 살아온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달동네가 대규모 주택단지로 변모하면 대규모 상가들도 속속 이곳에 둥지를 튼다. 특히 새 주택단지가 되는 달동네가 서울 도심과의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는 장점이 알려지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중산층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것이다. 이 지역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택이나 아파트, 상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이에 따라 주택 가격은 물론 상가 임대료도 크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불법으로 이 지역에서 수십 년간 살아온 원주민 가운데 여유자금이 없는 이들은 아파트 분양 가격이 폭등하고 상가 임대료가 크게 오르는 현실에 위협을 느낀다. 그러다 결국 짐을 싸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신세가 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의미

경제학과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낙후된 옛 지역이 갑자기 번성해 지면서 중산층 이상이 몰려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내몰리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부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는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1964년 처음 소개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상류계급또는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나왔다. 쉽게 설명하면 젠트리피케이션 은 신사가 되는 신사화(紳士化)’를 뜻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앞서 설명했듯이 낙후 지역이 마치 하루아침에 신사계급이 사는 지역처럼 바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루스 글래스는 1960년대 영국 런던이 젠트리피케이션이 되고 있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 런던은 1960년대 전후만 해도 젊은 예술가와 소상공인이 터를 잡아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곳이었다. 당시 런던은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모습을 띠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문화와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풍류객이 모여들던 런던의 정취도 대규모 개발에 밀려 점차 사라졌다. 도시 개발로 초고층 건물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동안 런던문화를 이끌어 온 예술가들은 임대료 등이 싼 곳을 찾아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다. 다른 지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기 시작한 이들은 예술가뿐만이 아니었다.

런던에서 작은 규모의 장사를 해 온 이들도 런던 대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결국 다른 도시로 사업 거점을 옮겨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루스 글래스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면 주택 가격은 물론 임대료, 기타 서비스 요금도 올라 가난한 원주민은 다른 지역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젠트리피케이션은 지방 정부나 기업이 특정 산업이나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재개발 형식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경제발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하지만 원주민들로서는 하루아침에 오랫동안 살아 온 자신의 터전이 사라지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함정극복 못해

젠트리피케이션은 비단 영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 뉴욕도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타임스퀘어 전광판이 24시간 잠들지 않는 뉴욕은 명실상부한 세계 금융 거점 지역이다. 뉴욕은 어마어마한 돈과 초호화건물의 집산지로 자리매김했지만, 1970년 이전에는 범죄가 창궐하던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고담(Gotham)(City)가 범죄와 부패로 얼룩진 무법천지의 도시, 뉴욕을 배경으로 삼은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범죄자와 실업자가 들끓어 뉴욕 시민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고 결국 뉴욕을 떠나는 이들이 연간 10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결국 뉴욕시 당국은 도시 이미지를 재건하기 위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이 러브 뉴욕(I LOVE NEWYORK)’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도시 재건에 나섰다. 이후 뉴욕에는 관광객이 늘기 시작해 1980년대 본격적인 도시 재건을 맞이한다. 이 과정에서 뉴욕판 젠트리피케이션이 등장했다. 뉴욕 맨해튼 남쪽에는 화랑(畵廊) 밀집지대로 유명한 소호(Soho)가 자리를 잡았다.

원래 소호라는 명칭은 ‘South of Houston’의 약어로 공장, 창고 지구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소호는 공장이 가동을 멈추자 1960년대부터 예술가들이 값싼 임대료를 찾아 모여드는 곳이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미국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문화·예술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소호에 몰려들면서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은 크게 올라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졌다. 결국, 예술 발전에 따른 후폭풍이 커지면서 이곳에서 활동해 온 많은 예술가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1980년대 초부터 소호를 떠나는 사태가 이어졌다. 결국, 소호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예술과 문화의 전당이라는 이미지가 사라지게 됐다.

예술의 도시인 프랑스 파리도 예외는 아니다. 파리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이자 박물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공공기관·호텔·아파트 등 대부분 건물이 중세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도 프랑스판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 그 시점은 프랑스가 1945년 발생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면서부터였다.

파리는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도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전쟁으로 허물어진 거리 곳곳에 대형 상가가 속속 등장했고, 이곳에서 삶을 영위해 온 소상공인들과 예술가들도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여지없이 쫓겨났다.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에 나선 선진국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역풍을 미처 피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한국판 젠트리피케이션, 그 해법은?



한국도 도시 개발에 따른 원주민의 슬픔을 피하지는 못했다. 서울 신촌, 대학로를 비롯해 종로구 서촌, 최근에는 상수동과 성수동 등지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촌은 1984년 지하철 2호선(신촌역)이 개통되면서 지역 풍속도가 크게 달라졌다. 지하철 노선이 개통되기 전의 신촌은 세탁소, 목욕탕, 미용실 등이 많았다. 그러나 2호선 개통 이후 지역 상권 임대료가 올라가면서 고급 카페나 베이커리(빵집), 서양식 식당이 속속 모습을 나타냈다.

종로구 서촌은 2000년대 후반까지 근린상점이 대부분인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수성동 계곡이 복원되면서 사람들이 대거 몰리는 핫 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따라 서촌은 관광객을 겨냥한 상업시설이 대거 등장하면서 임대료가 급등해 원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는 홍역을 앓았다.

성동구 성수동도 가장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된 지역이다. 성수동은 2012년까지만 해도 근린상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서울숲 복원과 맞물려 근린상점은 줄어들고 카페와 서양식 음식점 수는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한국의 경우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면서 주거지역에 원래 둥지를 튼 근린상점이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문제점이 불거지자 서울시는 201511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만들어 상가 임차인 보호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고 도시 발전을 모두 젠트리피케이션의 프레임으로 묶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피해야 한다. 도시 개발에 따른 원주민 피해 등 부작용이 있지만, 도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은 이른바 도시재생사업은 도시 발전에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고색창연한 옛 건물 등 문화유산과 예술가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화 시대를 맞아 글로벌 기업과 자본을 적극 유치하기 위한 효율성과 현대성을 갖춘 건물과 상가의 등장 역시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도시재생 사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사업은 향후 5년간 50조 원을 투입하는 이른바 도시재생 뉴딜 사업으로 불린다. 해마다 10조 원씩 5년간 모두 50조 원을 투입해 전국 500곳을 재생하겠다는 얘기다. 낙후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는 등 지역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사업인 셈이다.

문제는 도시개발 못지않게 지역 원주민의 주거 안정 대책을 마련하고 문화적 훼손을 최소화하는 운영의 묘를 어떻게 살리느냐는 것이다. 지자체가 직접 나서 건물주와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것도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소상공인과 문화예술인이 싼값에 사무실을 빌릴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젠트리피케이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생(相生)’ 하는 생활철학을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출처 : 코레일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