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으로 등장한
넛지(Nudge)
우리는 주변에서 서로를 날 선 눈으로 바라보며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폭언과 욕설이 오가거나,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이쯤 되면 ‘한국인은 다혈질’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만 같다.
왜 우리는 갈등국면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이지 못할까?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남의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넛지, 현명한 결정을 이끄는 결정체
상대방과의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과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기법을 흔히 ‘넛지(Nudge)’라고 한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갈등을 크게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의 선택을 유도해 문제를 조용히 해결한다는 뜻인 셈이다. 상대방 어깨를 가볍게 툭 치거 나 팔꿈치로 겨드랑이를 슬쩍 찔러 분위기를 환기시킴으로써 상황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기 때문 이다.
‘넛지’는 최근 일반 사회현상은 물론 경제학과도 관련이 있다. 경제학에 ‘행동경제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행동경제학은 수치와 데이터로 경제 현상을 보지 않고, 인간의 심리적 특성과 경제 현상을 접목 했다. 즉, 소비행태나 기타 소비자 행동과 경제 현상과의 교집합을 만들어 냈다는 얘기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넛지 개념을 처음 소개한 리처드 H. 탈러 미국 시카고대학 부스경영대학원 교수가 수상한 것도 넛지에 대한 폭발적 관심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노벨상을 주는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탈러 교수가 “개인 의사결정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 과 심리학적 분석을 연결하는 데 기여했다”며 수상 배경을 밝혔는데, 그 수상 배경을 쉽게 정리하면 사람들이 같은 돈이라 할지라도 심리적인 목적과 이유에 따라 그 돈을 각각 다르게 취급한다는 얘기다. 탈러 교수는 개인 투자에서부터 자녀교육, 식생활, 자신의 신념에 이르기까지, 인생을 살면서 수시로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자칫 부적절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개인이 실수를 반복하는 이유는 여러 편견 때문이며, 이제 틀린 결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넛지는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설계’의 결정체다. 다시 설명하면 모든 선택결정에 본인만의 독선과 논리만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고, 상대방이 부드럽게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 내라는 얘기와도 같다.
결국 넛지는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선택설계’의 결정체다.
다시 설명하면 모든 선택결정에 본인만의 독선과
논리만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고,
상대방이 부드럽게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 내라는 얘기와도 같다.
자칫 딱딱하게 들릴 수 있는 넛지 개념은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넛지의 대표적인 예는 남자 화장실에 있는 소변기다. 소변기 중앙에 파리를 그려 넣었더니 소변이 변기 밖으로 튀는 양이 무려 80%나 줄었다. 볼일(?)이라는 거사를 치르고 있는데 눈에 띈 파리를 그냥 둘 수 없고 소변으로 응징(?)하겠다는 심리를 부추긴 것은 아닐까.
지역 주민에게 매달 고지하는 전기·가스 요금 고지서에 새로운 정보를 추가해 보내는 것도 넛지의 예다. 여기서 추가된 새로운 정보는 이웃 가구들의 평균 사용량이다. 그랬더니 의외의 상황이 벌어 졌다. 그다음 달부터 평균 이상의 에너지를 쓰던 가구는 사용량을 크게 줄였고, 평균 이하로 소비하던 가구는 반대로 사용량을 눈에 띄게 늘린 것이다. 단순한 정보 하나가 에너지 소비를 좌지우지한 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실험이다.
이밖에 자동차 과속을 예방하는 캠페인, 쓰레기 불법 투기를 줄이는 대국민 계몽 활동, 범죄 예방 노력 등이 넛지에 해당한다. 담배를 많이 피우지 말라는 경고 대신 담뱃갑에 썩은 폐 사진을 올려놓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넛지의 핵심은 명령이나 지시하지 않고
행동을 유도하는 것!
그 대표적인 예가 파리가 그려진 남자화장실 변기.
소변기 안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었더니
변기 밖으로 튀어나가는 소변이 80% 줄어들었다.
세종대왕의 ‘넛지 리더십’을 배워라
그렇다면 ‘넛지’는 우리 한국인 DNA에서는 찾기 힘든 개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조선 시대 세종대왕이 넛지를 제대로 실천한 대표적인 지도자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적인 왕(王)의 권위에 의존하는 대신, 신하와 백성들에게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한 인물 가운데 하나다. 모화(慕華)사상이 지배적이던 당시에 한글을 창제하고 노비 출신인 장영실에게 벼슬을 주며 그를 조선 시대 최고 과학자로 만든 세종대왕의 업적은 순조롭게 이뤄진 것이 아니다. 당시 한글과 장영실 문제를 놓고 유림儒林)들의 반발이 얼마나 거셌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때 세종대왕은 강압적인 수단이 아닌 대화와 설득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고 정책을 결정했다. 그는 그때 이미 ‘넛지’의 위력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행동을 유도하고 변화를 유도하라!
그것이 바로 넛지의 힘!
조선 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지난 2015년 12월 1일 서울 지하철 3호선. 3호선 객차 두 칸에는 눈에 띄는 스티커가 있었다. 두 칸 좌석 밑에 붙여놓은 하트 모양 오렌지 스티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재미있는 점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스티커 위에 발을 올리고 앉았다는 점이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쩍벌남(맨스프레딩:manspreading)을 막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들어갈 정도인 맨스프레딩은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아 옆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사회적 논란이 된 쩍벌남의 잘못된 관행과 습관을 바꾸기 위해 정부나 지하철 당국이 강압적으로 시민들을 규제하기보다 오렌지 하트 스티커로 부드럽게 해결 한 셈이다.
그렇다면 넛지 관점에서 정부와 기업 간의 갈등 양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 미국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 (Cass R. Sunstein)은 정부와 시장 간 영역 다툼이 해묵은 이슈라고 갈파한다. 기업이 관여됐지만 정부와 시장 간의 힘겨루기는 사실 경제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정치의 싸움으로 봐야 한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 정책과 결정에 기업 등 민간주체가 크게 반발하면, 정책 입안자는 이를 압박하고 정당성만을 강조하면 안 된다. 기업을 상대로 정책의 방향과 취지, 향후 파장 등을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넛지의 기본정신이다. 강요나 강압에 의한 방식이 아니라 이해와 배려에 바탕을 두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을 이끄는 힘은 생각보다 막강하다.
<출처 : 코레일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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